진짜 사랑하는 이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때로 명화는 너무 멀거나 흠칫 가깝거나. 오래고 먼 세계에서 보내는 계시이거나 위로같기도 하다. 책 속에서 만나는 명화들은 맨질한 종이에 갇혀 생동감이 없었다. 고흐의 별도 노란집도 사이프러스 나무도 질감이 없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림 속의 서사와 작가의 스토리와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같은 것. 그렇게 그림에 이야기가 입혀지자 비로소 명화의 가치가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고흐와 태오의 편지속에서 예술은 아몬드 나무처럼 피어났다.

이처럼 서사는 중요하다. 인공지능이 척척 그려내는 그림이 예술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결과만 있는 그림, 말그대로 그저 생성된 그림, 아무리 아름답고 잘 그렸고 대단해도, 거기엔 어떤 서사도 들어있지 않다. 물론 시한부 인생의 어느 소녀가 화가가 꿈이었는데 인공지능이 그 꿈을 이뤄줬어요! 한다면, 그걸 서사라 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가지 더,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에는 삶의 시간이 들어있지 않다.

흙바닥에 이유없이 동그랗게 그리고 지우던 유년의 오후, 모든 색을 덮고도 자기 색을 지켜주는 검정 크레파스의 힘, 물의 농도가 흐린 가을 하늘이 되던 수채의 신비, 캔버스 가득 줄장미를 심던 유화의 향기. 한사람이 지나온 삶의 시간들, 그를 그리는 혹은 그리운 시간이 들어있지 않다.

명화는 그런 시간의 축적과 삶의 서사가 만드는 것.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동시대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삶의 시간이 고스란히 무늬가 된 그림,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투영된 작품이 우리 시대의 명화가 된다. 작가만의 고유한 서사나 스토리가 진실하고 매력적이면 더욱 영감 충만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전시회에서 언제나 작가를 만날 수 없고 그림을 볼 때 일일이 설명을 들을 수 없다. 옛날 명화처럼 책에서 구구절절 만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림이 하는 말, 그림 자체가 지니는 서사가 너무 중요하다.

도대체 그러면 서사는 어떻게 만드는 건가. 너무 뻔하게도 결국 삶이다. 매일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로 향하고 어떻게 파고드는가. 심연에 얼마나 오래 머물고, 보이는 세계 너머를 보려 하며, 그리로 건너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돌멩이, 구름 한 조각에서도 한 세계를 발견하고 그를 구현해내기를 멈추지 않는가. 끝이 없는 존재의 증명처럼 서사는 그렇게 실낱같은 시간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 내려앉은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물론 시간이 저절로 결과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을 등에 업고 그리는 사람, 그 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만이 구체를 만들어낸다. 예술은 지루하도록 꾸준한 시간의 산물이다. 점 하나를 찍었어도 선 하나만 그었어도 온 삶을 담았다면 충만한 것, 당당한 것.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나의 삶 자체이므로.

하지만 시간의 결정체인 예술이 인정받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건 참 씁쓸하다. 쓸쓸할 지언정 누구도 시간의 배신이라고 말하진 않는다. 진짜 사랑하는 이들은 돌아서지 않는다. 다만 나의 시간이 너의 시간에 닿지 않았을 뿐이라고, 먼 데서 오고 있는 이를 기다릴 뿐이다.

낮에 개성 만두국을 먹으러 갔다. 입구에 커다랗게 써있었다.
"맛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워하는 것이다."

어쩌면 예술도 그렇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로 평가할 수 없다. 평가 영역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덧칠로 두텁게 입혀진 색에는 한 사람의 절실함이 들었을지 모른다. 엉성하게 비어있는 오른켠에는 그 사람의 공허가 가득차 있을지 모른다. 단색화에는 오히려 오만가지 감정의 색들이 숨죽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림 한 점 응시하노라면 거기에 깃든 시간과 공간, 사람의 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부터 온 그것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쓰다보니 또 예술 옹호론자의 매일반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도 자기앞의 생에 정성을 다하는 삶의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하루라는 시간이 매일 주어지고, 그것은 서사의 찬란한 조각이다. 나는 생이라는 수많은 소재들 속에서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 일상을 반죽해 의미있는 서사를 만들고 이어붙여 어떻게 큰 그림을 그려갈 것인가. 쓰고보니 거창하다. 기실은 아무렇게나 내멋대로 그려도 되고 막 써도 된다.

삶도 예술도 내가 재밌어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예술이 아니다. 지루한 삶을 악착같이 빛나는 것으로 만들어보려 애쓰는 우리가 위대하다. 한 때 빛나던 것들의 남루를 견디는 우리가 숭고하다. 삶이라는 명화를 직접 쓰고 그리는 게 인생이다.

글 / 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