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더 다정했던 예술적 조우
'우리'라는 색채로 물든 시간: 함께여서 더 다정했던 예술적 만남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칭찬받을 일이 점차 드물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받던 순수한 격려나, 성인이 되어 성과를 낸 뒤에 듣던 결과 중심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온기가 그리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저에게 이번 예술감성아트코치 과정, 특히 임지영 대표님의 압도적인 긍정 피드백은 첫 수업부터 제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며 마음의 빗장을 열게 했습니다.
“세 점의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해 글을 써보세요.”라는 과제 앞에서 저는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세 그림 모두를 언급하며 짧은 글을 적어 내렸습니다. 가이드라인을 벗어난 그 엉뚱한 마음조차 대표님은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셨습니다. 결과물이 아닌 ‘나의 감정’과 ‘나의 느낌’ 그 자체에 오롯이 집중해 주시는 터치에, 저는 생경하면서도 뭉클한 자유를 맛보았습니다. 그 자유는 곧 영혼에 묻은 일상의 먼지를 씻어내 주는 시간이 되었고, 저에게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예술을 얼마나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우리는 흔히 예술을 마주할 때 먼저 배우고 이해하려 애씁니다. 지식으로 설명하고 해석하려 드는 관성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 속에서 깨달은 진실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예술은 머리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슴으로 먼저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마음을 열고 그 존재를 오롯이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향유라는 선물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왔습니다.
무엇보다 이 여정이 따스하고 풍성했던 이유는 각자의 고유한 색채로 공간을 채워준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경순 선생님의 닉네임 ‘향유’에는 선생님만의 깊은 향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따스한 음성과 주황빛처럼 아름다운 온기는 윤중식의 <석양>을 어느덧 ‘여경순의 석양’으로 다가오게 했습니다. 화면 속에서 조용하게 미소 짓던 김나연 선생님은 마치 은은하게 피어나는 꽃 같았고, 김미경 선생님의 톡톡 튀는 솔직한 감성과 일상 속 위트는 화면 밖까지 유쾌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비타민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가방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 선생님의 가방 속에는 역사와 예술, 그리고 그림에 대한 사랑을 지식 보따리처럼 꾹꾹 눌러 담아 아낌없이 나누어주신 한윤경 선생님, 예술을 향한 깊은 사랑이 보석처럼 반짝여 늘 우리 곁을 환하게 밝혀주던 김민정 선생님의 마음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일을 깊이 사랑하며 예술을 알아가고자 젊은 열정을 뿜어내던 이태건 선생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생동감 넘치는 하나의 작품이었습니다.
오랜 큐레이터의 내공을 내세우지 않으셨지만,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과 일본 작가 키네(KINE) 등을 소개하며 우리의 지평을 넓혀준 이소연 선생님의 시선은 무척 신선했습니다. 벚꽃 흐드러진 날 돌담길을 걸으며 예술을 논하고 싶을 만큼, 10분 글쓰기 시간에는 모니터 앞을 지키며 정성껏 문장을 빚어내던 정의진 선생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13살 된 배려심 많은 딸과 갤러리를 누빌 윤단심 선생님의 다정한 앞날을 그려보기도 하고, 엄마 코끼리 점보처럼 든든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아가와 우리를 지켜준 남혜진 선생님의 온기에 마음을 기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빛나는 색채들이 제 자리를 찾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늘 우리의 눈높이를 살피며 차분하게 이끌어 주신 임지영 대표님. 대표님의 세심하고 사려 깊은 리딩 덕분에 우리는 지식의 높은 벽을 넘어, 예술이라는 드넓은 바다에 기꺼이 몸을 담그고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색으로 빛나던 선생님들, 그리고 다정한 길잡이가 되어준 대표님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저는 예술을 다시 배우기보다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을 보아도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던 메마른 날들이 있었지만, 바짝 말라 있던 제 감수성의 촉수도 그림과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내가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림이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예술 글쓰기는 그림을 더 깊이 연모하게 만들었고, 조금 더 부지런히 제 마음의 뜰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시간은 모호했던 감정의 결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었고, 결국 나 자신을 가장 소중하게 돌보는 치유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예술을 멀리서 바라보는 이방인이 아니라, 예술을 온몸으로 향유하는 사람으로 한 뼘 더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예술은 멀고 특별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마음을 열어 곁에 있는 이들의 고유한 색채를 발견하고, 그 다정함에 미소 짓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예술은 이미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글 / 윤미숙 (아트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