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질문이다.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의미있는 질문이기보다는 도대체 뭘 그린거지? 이건 무슨 뜻이지? 차마 묻기 부끄러운 질문들이 머릿 속에 떠다닌다. 삶도 복잡해 죽겠는데 그림이나 보고 애같은 생각이나 하는 내가 한심해진다. 역시 예술은 너무 어려워, 뭘 좀 알아야 보는거지. 조금 나아질까 싶어 미술 관련 책들과 기사도 열심히 본다. 국공립 미술관도 종종 가고, 유명한 전시가 열릴라치면 줄서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오디오 가이드도 듣는다.
그림 한 점에 역사와 서사가 가득인데 솔직히 감동까지 받진 못한다. 그리고 집에 오면 깡그리 까먹는다. 내가 너무 무감한 사람인가. 더 공부해야 하나보다. 미술관에 종종 가니 누군가 나를 교양 있다며 예술 향유자시군요! 한다. 펄쩍 뛰어오르며 손사래를 친다. 예술 앞에선 유독 낮은 자세로 지나치게 겸손해진다. 아니예요, 나는 예술 잘 몰라요. 한마디로 쫀다.
예술은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역사와 가치는 후대에 매겨진 것이지, 그 시대에는 현상의 발현이거나 지향이거나. 그러므로 감각이 먼저라고 여겼다. 탁월한 감성으로 공감하는 능력, 시공간을 이동해 감정이입하는 능력. 지식이 주지 못하는 감동하는 능력. 이것이 예술의 효용이라 믿었다. 그래서 감각을 열어주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서양 미술사부터 현대 미술까지, 우리 옛그림부터 일러스트까지, 재미있는 그림과 질문을 찾아냈다.
지난 3년간 예술 수업을 정말 많이 했다.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노숙인부터 기업 VIP까지, 예술이라는 콘텐츠로 전연령대, 전계층을 다 만나봤다고 할 수 있다. 예술 앞에서는 모두가 수평적이다. 같은 그림 같은 질문으로 우리는 평등하게 만났다. 그리고 함께 보고 쓰고 나눴다. 3분 응시 15분 기록이라는 독특한 예술 향유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경험을 타고 성장했다. 사람들은 말그대로 난생 처음 해보는 일, 그림보고 글쓰기의 재미와 감동에 열광했다. 15분의 마법이라며 단 한 번의 참여로도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바짝 다가왔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것은 기적 같다.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은 내가 처음 예술 수업을 시작할 때 첫그림으로 준비한 그림이었다. 모든 예술이 얼마나 좋은 질문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가장 직관적인 그림이 필요했다. 보자마자 말 걸어오는 그림, 생각하게 하는 그림, 응답하고 싶은 그림. 다양한 자화상들을 보았지만 에곤 실레의 이중 자화상만큼 마음 깊숙이 훅 들어오는 그림은 없었다. 이 그림이라면 심연에 꽁꽁 감춰둔 쓸쓸한 내얼굴도 마주할 용기가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솔직한 나를 꺼내놓으면 그만큼 내마음은 가벼워질 것만 같았다.
생각은 적중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통해 고백하기 시작했다. 외면의 나, 내면의 나, 혹은 그 괴리에서 오는 어려움까지. 하기 힘든 이야기들을 예술을 통해 술술 쉽게 꺼내놓았다. 처음엔 예술의 힘, 그림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엔 15분의 힘,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우리들, 사람의 힘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 하고 싶다. 때로 기쁘고 때때로 쓸쓸한 우리의 삶을 터놓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나를 보여주고 싶다. 큰 위로나 응원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눈빛, 끄덕끄덕 알아주는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질문하지 않는 시대다. 안물, 안궁, TMI라며 서로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경계없는 SNS를 통해 그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도 속속들이 알게되므로. 대화하지 않는데 친하게 여겨지고, 잘 알게될수록 피로도는 높아진다.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와의 간극도 점점 커진다. 이중 자화상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다. 그림은 돌직구를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당신은 지금 괜찮은가?
그림의 질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게 응답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15분 동안 단 한 줄을 쓰신 분이다. 나이가 지긋한 여성분인데, 평생 미술관도 못가보고 살았다고 부끄러워했다. 그림을 내내 골똘히 보더니 저는 이 한줄밖에 생각이 안나요 하며 이렇게 발표했다.
"내가 좋다 내가 싫다."
선하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철학이 있다.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철학이 아니라 삶에 맞닿아 있는 그것이 진짜 사유고 통찰이다. 근사한 미술관에 얼마나 가봤는지 중요하지 않다. 멋있는 명화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진짜 향유란 주체가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예술의 주인공은 그림이 아니라 그 앞에 선 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평생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온 그 분은 그림 앞에서 단번에 알아챘다. 이중 자화상 속 두 사람 다 자기라는 걸. 그리고 두 사람 다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도.
살다보면 내가 초라하고 미워지는 날 많다. 게다가 요즘은 나 빼고 다 잘 살고 있는 기분도 든다. SNS 속의 사람들은 왜 그리 하나같이 멋지고 부자인가. 하면 된다 된다! 긍정 확언 따라하고 새벽 기상 루틴 만들면 진짜 인생이 바뀌는걸까. 물론 우리 모두 잘 살아보자고 부르짖는 말들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긍정 확언보다 구체 증언이 좋다. 먼데를 보는 것보다 눈 앞을 똑바로 보는 게 좋다.
지금을 잘 살아가기 위해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 좋은 질문은 좋은 생각을 길어올리고 좋은 사람을 만들어준다. 좋은 그림은 가장 좋은 질문이 되어준다. 그림 앞에서 나는 한번도 한 적 없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말들, 열고 싶었지만 굳게 닫혀있던 문들, 예술이 옆에 와 앉으면 스르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