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부산, 예술
불타오르네! 이글거리는 해는 오히려 온순을 선물했다. 짜증과 불쾌에 잠식당하기 싫어서 일부러 자주 웃었고 괜찮아 끄덕였다. 우리 지구 열받아 어떡하냐고 너스레도 떨었다. 무엇이든 느리게 생각했고 언제나 천천히 걸었다. 날씨와 싸우지 않고 여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부산에 왔다. 올해 세번째고 모두 출장이다. 게다가 여름 휴가 시즌에 찾은 부산은 북적북적, 활기찼다.
밀면을 먹으려다 포기했다. 태양광선 직격탄을 맞으며 줄서있다간 머리에서 불꽃이 터질지 모르니까. 줄 안 서도 되는 한산하고 시원한 식당에서 모밀을 먹고 바로 호텔로 들어왔다. 파크 하얏트 부산. 세 번의 출장 모두 이 곳에서 강의하고 묵었다. 게다가 이번엔 좀 놀라운 기획으로 오게 됐다. 한여름 휴가철, 호텔에 북카페가 생겼고 투숙객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신기하고 의아했다. 물론 너무 근사한 기획이지만 신나는 여름 휴가, 누가 책을 읽으러 올 것인가. 그리고 즐거운 저녁 시간, 과연 누가 예술 수업을 들으러 올 것인가. 이 특별한 기획은 파크 하얏트와 부산의 독서 인문학 모임 '담북'이 공동 주관했다. 8월 한달 동안만 공간과 프로그램이 운영되는데, 정말 멋진 협업이다. 이런 기획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홍보와 마케팅 이전에 특별한 가치를 세워가는 일이다. 호텔의 북카페 누가 오겠냐고 걱정했지만, 사람이 많이 오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책과 예술의 공간을 호텔 한 켠에 마련했다는 게 대단하다. 진심으로 그들을 소중히 여겨야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리고 놀랍게도 바다 노을 기막히게 아름다운 시간에, 저녁 먹으며 한 잔, 두 잔, 세 잔할 시간에, 예술 수업에 오신 분들과 만났다.
대학생 아들과 엄마는 그림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마음 이야기에 뭉클해 했다.
"가족끼리도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서로 마음을 드러내니 너무 좋네요. 오늘밤 선물받은 것 같아요. 아들이랑 한 잔 하러 가야겠어요!"
부산은 올 때마다 더 좋아진다. 출장도 여행이 되고, 모든 만남이 기쁜 웃음으로 남는다. 밤바다 보며 맥주 마시는데, 물멍 참 좋다. 잠들기 아까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