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단언하면 안된다. 내가 단언했었다. 글쓰기 수업은 하지 않겠다고. 내 글 쓸 시간도 없고, 타인에게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았다. 오래 전에 글쓰기 과정을 이끌었을 때의 악몽도 떠올랐다. 자칫 사람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버리는 것 같았고 매번 힘들고 진이 빠졌다.
글의 교류는 인생 통째로의 공유와 같아서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쓰였다. 나나 잘하세요! 각성하고 이후로는 책도 혼자 읽고 글도 혼자 쓰는 걸 고수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유년 시절 허약했다. (믿거나 말거나ㅋ) 심신이 취약한 아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는 읽기 쓰기였다. 다행히 너무 재밌는 세계여서 나는 현실의 친구랑 노는 것보다 책속 세상과 거기에서 파생된 글쓰기나 그리기 같은 작업을 너무 좋아했다.
내내 일기에 그런 걸 쓰고 그렸다. 좋아하니 재밌게 썼겠지. 선생님은 놀라워했고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자랑스레 일기를 돌려봤다. 독자가 생기자 동력이 커졌다. 그래, 좋아한다는 것. 가장 큰 재능은 좋아하는 마음이지.
좋아하니까 매일 썼다. 당연히 문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그런데도 내가 탁월하게 잘쓴다고는 생각해본적 없다. 글이란 게 하나의 고유한 삶과 같아서 잘쓰고 못쓰고의 영역이 아니라고도 여겼다. 모두 자기 삶이 있듯 자기 글이 있을 뿐.
살면서 놓지않은 하나가 글쓰기다. 책을 내겠다는 목표는 아예 없었다. 그저 방심하면 아무것도 아닌 하루, 아무 의미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게 싫어서 악착같이 삶의 사금들을 주워모으며 꾹꾹 눌러 쓴거다. 핸드폰 메모장이 생긴 후론 쓰기도 쉬워졌다. 모든 책을 핸드폰으로 썼다. 이래봬도 호모 스마트쿠스🤣다.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수업도 궁극의 쓰기 수업, 문학 수업이다. 읽는 일, 보는 일, 듣는 일 다 중요하지만 모두 수동태다. 가공 된 세계를 보여주는대로 다만 지켜보고 느껴보는 것. 그런데 쓰는 일은 주인공이 되는 일이다.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하게 되는 상태다. 특히 꾸역꾸역 쓰는 일은 한사람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이번에 새로운 기획, 신선한 방식으로 예술 글쓰기 과정을 만들었다. 아트코치 선생님들의 요청도 있었지만,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써야하고 더더 애써야 한다. 그것을 갈망하는 선생님들이 순식간에 1기, 2기를 전부 마감시켜버렸다. 대기 현상까지! 와...우! 이렇게나 글을 쓰고 싶었던 건가요?
어쩌면 평생의 노하우를 정리하게 될 것 같다. 물론 비법이라고 해봐야 잘 쓰는 것보다 진심으로 쓰는 일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으로 설계될 것이다. 기획안을 만들며 또 혼자 재밌어서 키킥 웃었다. 일단 내가 재밌어야 지치지 않는다. 예술교육과정이 그랬듯이 글쓰기도 나의 방식으로 밀고 나간다.
처음으로 합평과 첨삭 과정을 넣었다. 예전엔 단순 모임 형식이었으나 지금은 문장력 향상과 각자의 스타일 만들기라는 목표를 세웠다. 적확하되 신랄하지 않게 합평하고, 지혜롭되 무디지 않게 첨삭할 것이다. 평생을 기록주의자로 살았으니 그 정도 깜량은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마인드컨트롤이다. 즐거운 예감이 든다. 든다. 든다... 😆
글 / 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