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파문을 언어로 붙잡다
미술관 글쓰기 수업의 세 번째 시간이 찾아왔다. 덕수궁 돌담길은 점심시간을 맞이한 근처 직장인들과 관광객들로 가득해, 도로 전체가 거대한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그 활기찬 인파를 헤치고 내가 당도한 곳은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천경자 화백의 상설 전시관이 고요히 자리 잡고 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근대 미술의 자취가 정갈하게 펼쳐진 곳이다.
오늘의 미션은 명쾌했다. 내 마음을 건드리는 ‘좋은 그림’, 낯선 이질감을 주는 ‘이상한 그림’, 그리고 미소를 자아내는 ‘재미난 그림’을 각각 한 점씩 골라 글로 옮기는 것. 나는 먼저 전시장 전체를 가볍게 한 바퀴 돌며 작품의 숲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마음에 닿는 그림들 앞에 멈춰 서서 그들의 내면을 차분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고른 세 개의 조각은 이러하다. 좋은 그림은 ‘폭풍의 언덕’, 이상한 그림은 ‘상황 871’, 그리고 재미난 그림은 ‘밥상-세 그릇’이었다. 그림은 심해와 같은 깊이를 지니고 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만으로는 그 깊숙한 곳에 잠긴 심상을 길어 올릴 수 없다. 작품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 역시 머무르지 못하고 금세 흩어져 버린다. 그 찰나의 파문을 붙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글’로 옮겨야만 한다.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향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다. 막연한 감상을 언어라는 그물로 붙잡는 순간, 비로소 사유는 깊어지고 내 것이 된다. 오늘도 나는 그림을 매개로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하며,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감정과 기억의 결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이제 그 첫 번째 미션, 내가 만난 ‘좋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 천경자 화백이 1981년에 그려낸 고독의 풍경, ‘폭풍의 언덕’이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누런 갈대들이 거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일렁인다. 그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문득 나 또한 그 바람 부는 언덕 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본다. 내게로 불어오는 이 거친 바람이, 지금껏 마음속에 겹겹이 쌓아온 고민과 아픔을 모두 휩쓸어 가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림 속 갈대들은 바람이 이끄는 방향대로 사정없이 흔들린다. 스스로 지탱할 수 없는 몸을 누군가에게 의지하듯 사방으로 흩날리며 서 있는 모습이 어쩐지 애처롭다. 생의 끝자락에서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버텨내다 결국 스러지겠지만, 대지에 뿌리 내린 저들은 어느 때인가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오를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우리의 삶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흔들림은 불안정이 아니라, 꿋꿋이 버텨내고 있다는 가장 치열한 증거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내게 불어닥친 시련의 바람들은 때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었고 날카로운 갈등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깨달은 것은, 그 바람은 그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통과의례였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거셌던 바람의 기억은 이제 내 안에서 기쁨과 행복이라는 새로운 일렁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 나는 이 바람 부는 언덕에서 발걸음을 뗀다. 나부끼는 갈대밭을 지나, 저 멀리 보이는 푸르른 들판을 향해 나아간다. 메마른 대지에 단비가 스며들어 생명을 깨우듯, 내 삶에도 생기 가득한 초록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누런 갈대의 힘겨운 흔들림을 뒤로 하고, 나는 다시 푸르름을 향해 길을 나선다. 바람은 여전히 불어오지만, 이제 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씩씩하고 단단하다.
글 / 임재윤 아트코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