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향유자가 되는 3가지 방법
“예술의 시대입니다.” 라고 쓰면 이 글을 읽기 싫어질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예술 뉴스나 소식을 듣긴 하는데,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국공립 미술관들에서 유명한 전시를 줄지어 하고, 요즘엔 예약 경쟁도 치열하다던데, 사람들은 왜 미술관에 가는걸까. 진짜 그림보는 일이 재미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궁금한 게 많지만 물어볼 데는 없습니다. 괜히 그런 걸 물어봤다간 무식이 들통나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예술 앞에선 조용해집니다. 어쩌다가 전시회를 가게 되어도 모두 조용합니다. 품위있는 예술 앞에서 어찌 감히 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예술이 이토록 흔해진 시대인데도, 꽤 많은 분들이 위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예술은 특별한 거라고, 그들만의 리그이고 나랑은 거리가 멀다고. 그래서 오늘은 제가 예술을 향유하는 법 세 가지를 알려드릴테니, 꼭 기억해주세요. 왜 꼭 예술을 누려야 하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예술이 아주 중요한 핵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술로 키우는 감성이 미래 시대의 역량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다가가야죠, 그동안 소원했던 예술한테.
첫째, 쫄지 마세요. 제가 이 말을 너무 많이 하고 다녀서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가면 제 목소리가 들린다고도 합니다. 아무리 기괴한 작품들이 있어도 움츠러들지 마세요. 그리고 모든 작품들을 일일이 다 보지 않아도 되고요. 전부 대단하게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진짜 대단한 건 그 예술 앞에 서있는 나입니다. 누군가 그림 한 점 응시하고 있는 내 등판을 본다면 와! 정말 멋있다고 생각지 않겠나요? 뭐 남들이 못보면 어떻습니까. 내가 나를 멋지게 생각하면 되지요. 그게 진짜고요.
둘째, 내 그림을 찾으세요. 그림을 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전시회에 가든 스스로에게 혹은 동행들에게도 미션을 주세요. 내가 좋아하는 그림 단 한 점 찾기! 우리는 예술에 지레 압도되어 줄서서 명화를 관람합니다.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또 그림보다 드로잉이 더 많은 건 왜 그런건지. 굳이 거기에 껴서 순서대로 다 보면서 답답해하지 마세요. 전시회에서는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단 한 점을 찾아내는 거예요. 놀랍게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은 나를 보여줍니다. 나의 취향, 나의 삶 거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을 거예요.
셋째, 기록하고 나누세요. 세상 제일 못 믿을 게 나의 기억입니다. 나는 늘 놀라운 생각을 하고 최고의 통찰을 하는데 그것은 언제나 재빠르게 휘발되어 버리지요. 그걸 붙잡는 방법은 딱 하나, 기록입니다. 요즘 전시회들은 비교적 사진 촬영에 너그러워요. SNS가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을 통해 퍼지는 입소문이 전시의 흥망성쇠를 가르니까요. 그러므로 반드시 어딘가 기록하세요. SNS면 더 좋습니다. 기록하는 순간부터 예술 향유자로 입문하는 것이니까요. 어색하다고요? 아무도 그리 보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기록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나의 취향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두세요.
그리고 안하던 질문 하나 꼭 던져보세요. 당신은 어떤 그림이 제일 좋았나요? 가족에게, 친구에게 한 번만 미친 척하고 물어보세요. 아마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거예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될 수도 있고요. 아니, 이런 사람이었어? 전혀 뜻밖의 면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지만 어쩌면 모두 애쓰고 있는지도 몰라요. 진심의 공감, 배려, 사랑. 이 어려운 걸 예술이 쉽게 가능하게 합니다. 함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한없이 다정해져 있어요.
못 믿으시겠다고요? 그림 한 점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요? 제가 몇 가지 사례를 얘기해 드릴게요. 저는 예술 교육일을 하고 있는데요. 어린이부터 시니어까지, 노숙인부터 은행 VIP까지, 예술로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보았습니다. 거의 모두가 처음엔 예술을 어색해했고 불편해했어요. 선입견의 높은 벽 때문이지요.
그런데 선입견을 허물고, 예술의 주체가 되어 내 그림을 찾아내고,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며 예술과 바로 친해졌습니다. 예술은 또 하나의 언어거든요. 예술 앞에선 모두가 초심자입니다. 그래서 수평적인 관계가 가능해져요. 그림은 가장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가족 예술 수업이나 직장 워크숍에서 굉장히 재밌고 놀라운 일이 생겨요.
가족이나 동료가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요? 오히려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계는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지요. 그래서 관계에도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함께 그림을 보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울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처음 듣는 남편의 속이야기에 울컥 감동해서말이지요. 또 같은 직장 동료의 이야기에 뭉클, 목이 메기도 합니다. ‘너도 그랬구나’하는 따뜻한 공감의 장이 펼쳐지기도 하고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이 전시는 “퍽 많은 분들이 다녀갔습니다.”라고 말하면 또 입맛이 씁쓸하실 거예요. 나만 안 갔다 온 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요. 그런데요, 그러실 것 없습니다. 제가 강의를 하면서 가끔 질문하는데요. 우리나라 인구가 정말 많은가 보아요. 전시를 본 분들을 만나긴 아주 어렵거든요. 그러므로 예술 향유자라는 특별한 캐릭터는 아직 블루오션입니다. 수많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텅 비어 있고, 활개치고 다닐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장욱진 전시회에서 본 <길 위의 자화상>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썼는데요. 정말 세상 사람들의 관점은 그렇게도 다르고, 또 그런데도 다 긍정되고 이해가 됩니다. 그림을 보고 쓴 몇 편의 문장들을 보여드릴게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신발 벗고 얼른 쉬기를.
자, 이제 시작이야. 우산과 큰 가방까지 다 준비됐다. 화이팅!
저 신사를 쫓아가는 개가 꼭 나같다. 사회와 성공이라는 허상을 쫓아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막 도착했고, 또 누군가는 길을 떠나기 직전입니다. 또 누군가는 뜻밖에 개가 되기도 하고,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고 성찰합니다. 정말 신기하지요? 우리는 단지 그림을 함께 보았을 뿐인데 말입니다.
예술 향유, 이제 어떠신가요? 여전히 쫄아 계십니까? 혹은 관심 밖에 두셨나요? 예술, 이 재밌는 삶의 콘텐츠를 놓치지 마셔요. 방식은 지금 다 알려드렸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쫄지 말고 누리고, 나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서로 애호를 나누라는 것. 너무 쉽고 간단하지요.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행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미술관들이 전시회의 멋진 등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예술에 다가가는 우리의 등,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뒷모습이고 말고요!
출처 : 월간 국회도서관 2024. 1+2 ㅣ VOL.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