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고 자신의 생각 느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예술감성수업시간 . 그림 하나를 놓고 28명 모두가 다르게 본다. 서로 발표하겠다고 손을 들면 행복하고 난감하다. 모두를 발표 시키기엔 한정된 수업시간.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아이들과 너는 어떻게 그림이 보이니 하며 하루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간절히 자신이 발표하고 싶어하는 눈빛! 그 눈빛을 사랑한다. 허무맹랑한 상상력은없다. 쓸모없는 창의력은 없다. 무시받을 감수성은 없다. 아이들이 마구 쏟아내는 그 이야기들을 커다란 바구니에 담아 체에 걸러내고 모아 담고 싶다. 아이들이 퍼낸 문장들을 체에 받쳐 음 아 어 같은 추임새만 걸러내면 세상 어떤 철학가들도 따라올수 없는 인생문장을 만들수 있다.
오늘 나의 가슴을 마구뛰게 한 단어는... “저요!”, “저 시켜주세요!”
ㅡ 아트코치 박수현
< 엄마가 글을 쓰는 동안 >
다문화가정 지역소통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인 〈그림과 글이 만나는 포토에세이〉 워크숍 5회차. 다회기 수업을 할 때 가장 마음 쓰이는 것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참여자가 줄거나 수업이 중단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은 기존 참여자들의 소개로 새롭게 신청한 분들이 오셨다. 덕분에 모두 다시 자기소개를 했고, 수업은 첫 시간처럼 활기를 띠었다.
다문화가정 어머니들은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한국어에 익숙한 정도도 다르다. 그래서 단어 하나, 설명 하나도 조금 더 신중하게 준비한다. ‘우리나라’보다 ‘한국’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순간도 있다. 가능하면 참여자들에게 익숙한 내용이 자료에 포함되도록 한 번 더 찾아본다.
수업에는 아이와 함께 오는 분들도 있다. 어린아이는 안고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를 안고도 듣고 말할 수 있지만, 쓰고 붙이는 것은 어렵다. 글쓰기 시간이 되어 강의실을 돌며 참여자들이 글 쓰는 걸 지켜보다가 가장 어린아이에게 두 팔을 뻗었다. 낯가림이 조금 있었지만 강하게 거부하지 않길래 아이를 슬그머니 받아 안았다. 울지 않았다.
엄마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아이를 안고 엄마 곁에 있었다. 조금 지나니 가슴 앞으로 접었던 오른팔을 펴 내 어깨에 턱 걸쳤다. 경계심을 풀었다는 신호다. 내가 안전하다고, 엄마가 글을 쓰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아이가 믿는다고 생각하니 고맙고 뭉클했다.
한국에 온 지 1년 정도 밖에 안 된 어머니들이 한국어로 유창하게 말하고 글을 쓰는 모습에도 놀랐다. ‘나의 마을’ 이야기를 나누며 다양한 다문화가정 지원 프로그램과 복지관 이야기를 들었다. 수업을 하러 왔지만, 이렇게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강사인 나도 배우고 성장한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줄 때 아이는 내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더 돌렸다. 보고 싶은 가족과 멀리 떨어진 낯선 곳에 생활의 터전을 마련한 어머니들, 그리고 그 품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 마을에 조금 더 편안하게 뿌리내리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ㅡ 아트코치 박윤경
경남고등학교에서 교사 연수를 진행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대통령을 둘이나 배출한 학교답게, 교문에 걸린 현수막에는 ‘모두가 리더가 되는 토론학교’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학생들이 온종일 책을 읽고 비경쟁 토론과 디베이팅 수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 학교가 얼마나 진지하게 토론을 브랜드로 만들어가고 있는지 느껴졌다.
연수장소 입구에는 <인생미술관에 담기는 중입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일상적 글쓰기로 내 삶을 기록하는 법, 그림 한 점 앞에서 시작하는 당신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단순한 안내문을 넘어 연수를 기획한 선생님의 마음이 촘촘히 담겨 있었다. 또한 강사 소개를 내 책 속 문장을 인용해서 해준 선생님의 목소리에 그저 감동하고 말았다.
나는 먼저 글쓰기가 가진 치유의 힘과 책을 내고 나서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나누었다. 이어서 중학교에서 진행했던 <나도 도슨트>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아이들은 예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며 예술을 소재로 글을 썼다. 선생님들은 그 글 속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게 열리는지를 흥미롭게 바라봐 주셨다. 마지막으로 부산온라인학교의 <창작글쓰기> 수업을 이야기했다.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수업의 핵심임을 아이들의 작품을 통해서 전달했다.
비록 모의고사 감독 일정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교장·교감 선생님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셨고, 시험 감독을 마친 뒤 다시 돌아와 공감해 주신 선생님들의 응원에 힘이 났다. 연수를 마친 후에도 선생님들과 대화를 이어가며 예술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임을 다시 확인했다.
같은 이야기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만남은 중력처럼 새로운 끌림과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번 강의를 마련해 주신 수석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인간을 “별의 먼지로 이루어진 존재”라 했던가.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는 작은 존재이지만, 오늘의 짧은 만남과 대화 속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인생미술관』 스무 권은, 잘못 배달된 편지가 돌아오는 길처럼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달려오고 있으리라 믿는다. 가을이다. 감사한 마음도 더욱 익어간다.
ㅡ 아트코치 이강선
그림으로 나를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저 그림을 보는 게 좋아 그림을 보러 전시장에 자주 다녔을 뿐. 그림이 주는 위안과 휴식이 좋았지만 그 너머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림 앞에 서있는 내 모습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몇 해 전 예술 교육이 시작되고 그 주에 친정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연세가 있어서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불편한 부분이 있어 검사 받으러 갔다가 입원하고 췌장암으로 한달 만에 돌아가셨다. 당시에는 갑작스런 이별에 슬픔보다는 당혹스러움이 컸고 오히려 장례식 이후 삶의 곳곳에서 불쑥 슬픔과 맞닥뜨리곤 했다. 그럴 때 그림 한 점이 주는 위로가 컸다.
아이들의 긴 입시와 양가 부모님의 병환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던 차였다. 미련없이 오래 해오던 일을 접고 나를 찾기 시작했다. 좋아했지만 오래 전에 손을 놓았던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그림을 그렸던 것과 무용반 선생님이 무용을 해보지 않겠냐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직접 그린다는 것은 용기가 나지 않아서 원데이클래스로 몇 차례 드로잉을 배웠다. 그리고 그 무렵 방송댄스도 시작했다. 평소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책모임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에서 함께하는 것으로 시선을 바꿨다. 좀더 유연한 태도가 생기고 느슨한 연대가 가져다주는 힘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활동으로 어느새 나는 예술교육자가 되었다.
도서관, 학교, 유치원에서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낯선 그림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기를 응원하고 있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작품을 사랑하길 바라며 인공지능 시대 무엇보다 중요한 감성지능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좀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기길, 창의적이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어린이의 마음처럼 솔직하고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을 사람들과 나누며 예술로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
ㅡ 아트코치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