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동부에 예술 여행을 다녀왔다. 모든 경제, 문화, 예술의 중심이 된 뉴욕. 그곳의 대표 미술관들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마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노이에 갤러리. 미술관마다 특색있는 건물에 컬렉션 또한 개성 넘쳤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보다 보면 과부하가 걸리는데, 우리의 뇌는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향유하지 못하므로, 체력 안배에 가장 신경을 썼다. 예술보다, 우주보다, 내 컨디션이 제일 소중하므로. 미리 동선을 잘 짜고, 관람 시간 사이 휴식 시간까지 충분히 확보한 덕에 퍽 즐겁게 보고 느끼고 기록할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나라마다 관람 풍경도 다른 것 같다. 유럽엔 아이들이 퍽 많고 미술관 바닥에 앉아 그리거나 쓰는 경우가 많았고, 미국엔 노인들, 장애인, 그리고 이번엔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까지 만났다. 우리의 관람 문화가 아무래도 좀 경직되어있구나 생각됐다. 미술관이 꼭 조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예술의 의미는 단순히 작품을 '본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나눈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나 홀로 관람객도 많지만, 동행이 있다면 언어가 쓰일 수밖에.
예술은 언어이고, 그것은 세계 공용어다.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없고 인종의 장벽도 뛰어넘는다. 우리나라에서 프리즈 아트페어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는 것도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 때문 아닐까. 그림과 조형으로 구현된 세계인들의 생각 혹은 메시지가 듣고 싶은 것. 그래서 그림 앞에선 더러 말이 많아지기도 한다. 그림이라는 은유와 상징의 언어가 너무 재밌으므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미술관에 대한 책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패트릭 브링리라는 형을 잃고 생의 깊은 우울에 빠진 한 남자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에는 신기하게도 그림이 들어있지 않다. 메트엔 이미 저작권 풀린 그림들도 많은데 왜 도판을 싣지 않았을까.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은유와 상징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 방식, 그리고 결과까지, 한 사람의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수많은 유물들이 가득한 메트에서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상처와 결별하며 애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러니 그림의 서사보다 나의 언어, 나의 이야기가 더 중요했을 것이다. 밑줄 친 문장도 많았다. 특히 그림을 볼 때 지식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 1분 동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라는 것. 내가 늘 주장하던 바와 같아서 밑줄을 긋고 별 표시를 했다.
지난 프랑스 예술 여행 때는 현지 도슨트가 함께했다. 우피치, 오르셰 등 유명 미술관들을 거의 두 시간 넘게 설명을 들으며 쫓아다녔다. 주로 명화 위주의 시대 설명과 작품 서사. 그런데 일단 다리가 너무 아프고, 첨엔 좀 재밌어도 집중력이 떨어졌다. 나중엔 진이 빠져서 수신기 빼고 혼자 보러다녔다. 나는 그게 맞았다.
물론 누군가는 공부하듯 예술 지식을 쌓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그 또한 자기 취향이니까. 그런데 이번 뉴욕 여행에서는 여태껏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예술을 만났다. 지식이 아닌 직관으로,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미술관마다 새로운 미션을 함께하며 탐색과 몰입으로 나의 취향을 찾아본 것이다.
취향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거기에 진짜 내가 들어있고, 나를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본디 내가 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그림으로 살피고 들여다보는 것. 웃고 있는 속마음은 어떤지, 불편한 데는 없는지, 정말 괜찮은지 가만가만 어루만져주는 것.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거대한 예술 왕국에 와서도 내가 맞닥뜨리는 것은 궁극의 나여야 한다.
페트릭 브링리가 그리했듯이, 내가 오래 응시하는 그림들 속에는 하나같이 내가 있다. 삶이란 이렇게나 먼 데로 돌아 돌아 결국 나를 찾는 여정 같다. 나를 안아주는 과정 같다. 그것을 예술 여행으로 해낼 수 있다.
임지영 / 예술 칼럼니스트·(주)즐거운예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