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예술수업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제가요, 대치동 출신이거든요. 그런데 자존감이 진짜 낮아요. 늘 비교하고 평가되는 곳이다 보니 주눅이 들어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잘 몰랐는데 예술 교육 과정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이 너무 좋아요! 나의 한계를 깨우치고 밖으로 걸어나온 것 같아요."
잘 웃고 잘 우는, 통통 튀는 J선생님의 고백에 우린 잠깐 멍했다. 말하지 않은 행간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는데, 나도 그 아픔을 잘 안다. 강남 사람들의 명과 암. 사회적으로는 오, 강남! 부러운 대상일 수 있지만, 일상적으론 비교와 경쟁이 만연하고 점점 취약해지는 상태인.
J선생님도 지금 경기도에 살고 있는데, 삶의 만족도가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예술 교육자가 되어 아이들 수업을 하며, 너무 좋다고. 이제서야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사실 J선생님은 몇 번이나 내게 말로는 부족한 사랑과 감사를 수줍게 고백하곤 했다.
건강한 사람이 고백도 잘한다. 남녀간에 고백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느낀 고마움, 부러움, 귀여움, 사랑스러움, 또는 질투까지도. 솔직한 감정을 자기 언어로 전할 줄 아는 사람은 멘탈 건강하고 마음 단단한 사람이다.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것은 과거형인 것. 극복된 마음이다.
잠원동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에 있는 S초 예술 수업이 끝났다. 6명의 아트코치가 5학년 전학년을 맡아 진행했다. 아이들은 예상대로 똑똑했고 글을 잘 썼다. 똑똑하다는 건 학습된 결과지만, 창의적인 자유로움은 현저히 부족했다. 처음엔 모범 답안같은 글이 많았다. 그런데 4회차의 과정. 아이들은 모두 변화하고 눈에 띄게 달라진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긍정 피드백을 해주니, 자유로워진다. 그림을 보고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니, 친구들 글에 귀기울인다. 매시간 작품들을 보니 지루할 틈도 없고, 초집중한다. 오늘 마지막 수업에, 5학년 남학생이 그림으로 쓴 글을 읽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썼는데, 반 아이들은 처음에 놀라 쳐다보다가 곧 박수를 쳐줬다. 눈물을 닦고 다시 읽을 때까지 계속...
담임 선생님은 이 과정 이렇게 끝내기엔 너무 아쉽다고 했다. 반 아이들을 더 깊이 알고 이해하게 됐다고. 아이들이 쓴 글을 모두 스캔해서 파일로 만들어 반 문집을 만들겠다고 했다. 내게도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아이들은 자기가 받은 수업 중 가장 재밌었다는 쪽지를 전해줬다. '보오람'이란 이런거겠지.
자존감이란 게 외부 조건에 있지 않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동네에 살아도 내 마음 가난하면 초라한 삶인 거고, 어디에 살건 내 시공간을 사랑하면 부유한 삶이다. 예술 감성 교육은 그렇게 나를 사랑하고 타인에게 다정해지는 과정이다. 아이들 후기에 뭉클해지는 밤.
"이제 나에게 예술은 삶의 낙이다."
"나는 예술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랑하게 되었다."
"예술로 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내가 들은 모든 수업 중 이 수업이 가장 재밌었다."
"예술로 숨기고 있었던 것을 모두 쏟아낸 느낌이다."
"예술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이다."
"예술은 눈물이다. 내 마음을 털어놓아도 된다."
"예술은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그리는 것이다. 잘 그리는 것보다 창의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
"선생님 덕에 제 앞의 장벽을 깨고 예술을 넓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이 예술 수업, 계속 하고 싶다."
글 / 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