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힘들면 힘이 쌓이고 있는 것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고등학생들을 만나고 오면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친구가 꼭 있다. 얌전한데 폭풍을 껴안고 있고, 가만한데 튀어오르고 있는. 그림으로 쓴 글을 들으면 더욱 감정이입이 된다. 그만 나도 모르게 객관성을 잃고, 더 다정한 피드백을 하게 된다.

나도 혼돈의 여고 시절이었다. 사회는 불안정했고, 여물지 못한 지성과 감성이 물불처럼 겨루었고, 그런 혼란을 억누르며 명랑한체 웃었다. 보통 그 시기의 아이들이 그렇듯 독서와 쓰기, 음악 등으로 견디었다. 고1 때 담임 선생님이 내가 읽는 책이 고등학생 수준에 안맞는다고 계속 지적했다. 참다참다 방학 때 편지를 썼다. 책에 수준이 어딨냐고, 독서는 자유로운 거라고, 읽든 읽다 말든 읽고 모르든 그것은 나의 자유므로 선생님은 선생님의 독서를 하십시오. 아이쿠, 맹랑했네. 놀랍게도 선생님은 정중히 사과하셨고, 나는 그분께 어른의 태도를 배웠다.

고등학생, 힘든 시기지만 가능성과 재미의 시간이다. 경기도 교육청 지원 사업으로 J고등학교 예술 수업을 2회차에 걸쳐 진행했다. 60명 가까이되는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완전 놀랐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발표했는데, 만나본 고등학생들 중 최고였다. 그리고 이 학교에는 고흐가 없었다. 복도에 이우환부터 민화까지, 우리나라 예술 작품들이 즐비했다.





남학생들도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감성의 언어로 자기 마음을 솔직히 표현했다. 주변에서 워우! 어우야! 리액션이 쏟아졌는데, 단호하게 얘기해줬다. 감성 언어를 쓰는 걸 어색해 하면 안된다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감성과 창의력이 능력이 된다고. 지금처럼 당당하게 나를 표현해야 된다고. 그리고 우리 서로 공감하고 존중하자고.

"복도에 이우환 작품 연작이 있죠. 도대체 뭘 그린 건지 모르겠죠. 그림의 의미나 가치 이런 거 몰라도돼요. 대신 그림 앞에 가만히 서보는 거예요. 그리고 응시해보세요. 작가가 선을 하나씩 그으며 몰입했을 시간을 떠올려보세요. 잠시 숨을 멈추고 온전히 한 획에 집중한 순간. 잠깐이지만 우리도 그 몰입을 감각해보는 거예요. 그때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 기록해 두세요. 그 순간 우리는 탁월한 사람이 되는겁니다."

이인상의 와운과 전기의 매화초옥도. 조선 시대 그림을 보고 시를 짓게 했는데, 너무 웃기고 짠하고 뭉클한 시들이 쏟아졌다. 한 친구가 와운처럼 소용돌이치는 혼란스런 감정을 고백했다.

"그림의 구름처럼 혼란스럽군요. 그런데 모든 성장엔 성장통이 있어요. 지금 힘들다면 힘이 쌓이고 있는거예요. 혼란은 성장의 필연같은거죠. 키가 쑥쑥 크고 있네요!"

마음이 간 그 친구에게 내책을 보내줬다. 꼭 읽지 않아도 된단다. 아이들이 어느 피곤한 날에 만났던 재밌는 시간으로 기억한다면 더할나위 없겠다.

[출처] 지금 힘들면 힘이 쌓이고 있는 것|작성자 예술기록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