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 은행 지점장, 고객 조찬


다시 부산이다. 출장으로 지방 도시를 다니면 휴가처럼 참 좋겠다고 기뻐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바다가 보이는 숙소도 처음 잠깐 감탄하고 눈이 머무르지 않고, 신선한 해물 식사도 일 이야기 하다 보면 음미할 새 없이 끝나 있다. 삶을 향유하는 건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애써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생활인의 늪은 넓고도 깊다. 도대체 언제 여유가 생겨 예술을 누리고 인생을 향유하지. 그건 먹고 살만한 사람들의 유희 아닐까, 우리는 살수록 시큰둥해지고 무표정해진다.

올해 초 한 은행의 임직원 연수를 즐겁게 마쳤는데, 퍽 좋은 호응을 받았다. 그래서 부산, 울산, 경남지역 리더분들과 고객의 조찬 특강에 초청되어 강의를 하러 왔다. 하루 먼저 왔지만, 계속 일이 있어 바다를 산책 할 여유도 없었다. 무리해서 바다로 나갔다 해도 마음이 온전히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의 고시 '완당정게'가 생각났다. 

'네 마음이 고요할 땐 저자거리도 산이지만, 

네 마음이 흐트러질 땐 산이어도 저자거리 되네. 

오직 마음 안에서 저자와 산이 나뉜다네. 

네가 장터에 있으면서 여기가 산 속이라 생각하면 

푸른 솔이 왼편에 있고 흰구름이 앞에서 일어나리'

그래서 늘 공들여 살피는 것이 마음이다. 그 마음을 더욱 잘 살피기 위해 그림 앞에 서는 것이고. 예술 강의는 그림의 위대함이나 대단함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똑같은 생활의 루틴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설렘, 비슷한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잊고 사는 그의 문장, 그 소중한 것들을 캐내 보자고 그림을 들이미는 것이다. 질문하는 것이다. 예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의 강의장은 아름다웠다. 우리는 다양한 그림들을 보고,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을 말하며, 서로의 생각에 박수를 보냈지만, 이른 아침 시간 바다를 보며 먹은 아침 식사, 간간히 터뜨린 웃음, 몇 점의 그림을 응시한 시간, 그렇게 만끽한 시간만으로 충분한 향유임을 알려드렸다.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가 낮은 이유는 기준이 높기 때문이다. 화려한 사회, 비교의 문화가 당연해지며 자존감은 낮아졌고 행복하기 힘들어졌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달려간 곳은 바다. 가 아니고 오초량. 이름도 특별한 이곳은 일맥문화재단의 공간으로 초량동 구도심에 있는 일복식 구옥이다. 몇 년 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주변의 높은 아파트 가운데 오도카니 자리 잡은 100년 된 옛집이 생경하고 애잔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공간이 오초량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내걸고 일반인에게 공개를 시작했다.


미리 예약해두고 설레며 달려왔는데, 아! 사실 이 공간에 대해 묘사를 하고, 설명을 하는 건 사족이란 생각이 든다. 이 공간은 우리에게 깊은 숲을 보여주고 있다. 맑은 숨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아주 드넓은 공간도 아니고 특별한 정원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높은 건물 가운데 지켜진 옛집의 정취, 역사의 숨결, 다정한 마음 같은 걸 오롯이 감각할 수 있는 곳이다.


사방을 둘러친 대나무는 이곳이 거친 생으로부터 안전 지대임을 말해주는 것 같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마룻바닥은 이른 아침 어머니의 수고를 떠올리게 한다. 정성이 가득한 차바구니는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가만히 알려준다. 옛집의 방들을 조심조심 가만가만 걷다가 자주 멈췄다. 나도 모르게 아! 음! 하! 내면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개관하며, 분더카머 (호기심의 방, 경이로운 방) 전시를 하고 있는데, 넘침도 부족함도 없었다. 모든 작품이 본디 그 곳이 제 자리인 것처럼 존재했다. 정원이 보이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목련차를 마셨다. 차바구니에 시집이 들어 있는데, 와, 이문재 선생님의 초판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표지의 젊디 젊은 얼굴이 낯설지 않다. 시인은 늙지 않으니까.

오초량, 안내문을 보니 도시의 작은 틈. 이라고 쓰여 있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이고. 이런 공간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아끼는 마음으로 두고두고 사랑해야 할 공간이다. 오초량에서 푸른 솔이 왼편에 있고, 흰구름이 앞에서 일어났다. 출장이 아니라 완벽한 쉼이 됐다. 오직 마음 안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


글 / 임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