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 리더과정> 1기 수강 후기


예술교육 리더과정 수강 후기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보고,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 감성 글쓰기로 진행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김예원 


멀리서 보면, 그것은 그저 파란색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목소리입니다. 어떤 이유로 그곳에 있는지, 왜 그런 모습인지 나는 모릅니다. 나와 그것은 가느다란 실오라기 하나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이를 채우는 투명한 공기가 어쩐지 높고 견고한 벽처럼 느껴집니다. 

​크기를 키워봅니다.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고, 눈을 비벼가며 동그라미 하나하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고, 왜 그런 모습이냐고 묻기도 하고, 개구리 알처럼 생겼다며 우스갯소리도 합니다. 시간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천천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귀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나는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실은 파란 여백이 있었다는 사실을, 동그라미 속 점들이 놀랍게도 모두 다 다른 모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검은 점, 파란 점, 퍼런 점, 뿌연 점, 뭉개진 점, 선명한 점 들이 제각기의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지요. 그 모습, 그 목소리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 있어 더 이상 의미 없는 화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각기 다른 모양과 빛으로 반짝이는 저 하늘의 별, 깊고 넓은 바다로의 여정을 함께 하는 물방울, 만남과 헤어짐의 끝없는 반복 속에서 서로의 마음에 남겨지는 애달픈 그리움이었지요. 

​우리의 만남도 그러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파란 벽과 같았던 그들은 8주간의 시간을 통과하며 제각기의 색과 밝기로 빛나는 별이 되어 있었고, 함께 예술이라는 깊고 넓은 바다로 향하는 물방울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술을 알기 위해 시작했던 과정은 어쩌면 사람을 알고 그들 속에 빛나는 예술의 단면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흰 벽 위 가지런히 걸려 있는 그림만이 예술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 속 예술이며 빛나는 명작이란 사실을 말이지요. 

그림을 보고 말을 거는 시간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나아가 모니터 저 너머에서 함께 울고 웃는 누군가의 마음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시간으로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적 같은 순간이 예술이란 매개체로 가능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아니, 예술이란 그런 것임을 끊임없이 일깨워주신 임지영 선생님, 그리고 함께 용기를 내어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던 동기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예술을 통한 수많은 존재들과의 마주침이 제 마음 속에 작은 불씨를 지핀 것 같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빛나는 설렘’으로 가득 찰 수 있음을 믿게 되었어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 그의 낯선 표정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조금은 더 따뜻한 눈길로 응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물론 지금이 끝은 아니지요. 이제 한 걸음입니다. 이 한 걸음으로 그 다음 발걸음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갑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 걸음을 함께 한 사람들, 그리고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주신 임지영 선생님과 더불어 조금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학당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예술을 느끼며 함께 했던 8주의 시간에 감사합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최병일 


2011년 숭례문학당을 만나 인문학 책을 읽고 토론하며 그동안 자기개발서와 베스트셀러를 읽느라 허송세월을 보내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잃어버린 세월을 보충하기 위한 반작용으로 학당에서 검증된 책을 꾸준히 읽고 또 읽었다. 문학으로 감성을 역사와 철학으로 이성을 깨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던 차에 <신영복 평전>을 읽고 이성을 예리하게 벼리기 위해 문사철을 감성을 깨우기 위해 시서화를 가까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서화를 공부하기 위한 꿈도 꿀 수 없어 이번 생애에 인연을 맺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무렵 예술교육 입문과정 8주 수업을 받게 되었다. 첫 수업에서 에곤 쉴레의 이중 자화상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이 있었는데 자신이 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수강생을 보며 눈이 번쩍 띄었다. 그림 한 점이 마음 속 깊이 감춰져 있던 한을 건드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는 “책은 도끼다”라고 했다는데, 그림도 화석이 되어버린 감성을 깨우는 도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술교육 리더과정이 개설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수강신청을 하고 시간만 나면 작가들에 대한 책을 읽고 미술관을 찾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수박 겉핥기식으로 마구 돌아다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6개 전시관을 한나절 만에 다 돌았다. 그래도 수확이 있었다. 한 작품 앞에서 30분 이상 머무르며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느낀 것이다. 미술관은 나와 관계없는 곳으로 생각했었는데 내 삶의 한 가운데로 서서히 스며들어왔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벌써 8강을 마쳤다. 미술, 아무것도 몰라 입도 뻥끗할 수 없었던 무지했던 초보자를 칭찬과 격려로 깨우쳐 준 임지영 선생 덕분에 미술관에서 느리게 걷는 법을 배웠다. 미술관 입구에 가면 언제나 '쫄지마'라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면접을 보러 가는 취준생이 아니라 면접관이 되어 당당하게 그림 앞에 서게 된 건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그림은 작가의 자화상'이란 말은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할 문장이다. 

함께 공부한 도반들 덕분에 매 주 수업을 받을 때마다 행복했다. 어디서 이렇게 귀한 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수업 시간에 같은 그림을 보고 쓴 글을 돌아가며 읽을 때, 미술관 다녀온 과제가 카페에 올라올 때 감사 ⸳ 감탄 ⸳ 감동의 연속이었다. 임지영 선생님께서 첫 시간에 강조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료식은 했지만 다른 수업과 달리 끝났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앞으로 평생 함께 할 도반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독서토론을 알게 된 후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가족 독서토론을 4년 넘게 진행했다. 토론을 하는 동안 서로 개성을 가진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물로 며느리와 함께 공저한 <한 지붕 북클럽>이란 책 출간을 앞두고 있다. 며느리의 제안으로 <한 지붕 예술클럽> 출간에 대한 목표가 생겼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손녀까지 3대가 함께 미술관을 돌아볼 생각이다. 예술토론과 글쓰기를 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우리의 새로운 만남은 그림처럼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ㅡ박향아 


아득한 마음, 그러나 아름다운 마음. 당신에게 ‘그리움’은 긍정어입니까? 부정어입니까? 저는 ‘아름다운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게 ‘데미안’이라는 책이 선과 악이 혼재된 아름다움을 증명한다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기쁨과 슬픔이 혼재된 그리움의 아름다움을 구현합니다. ‘그립고 그립고 그립다’라는 노래처럼, 그리움은 하나의 단어로 담을 수 없는 무한의 에너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내뱉음이 어색하지 않고 어울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성은 그 그리움을 종국에 완성합니다. 그 반복이 실체니까요. 그리고 예술도 이렇게 그 무한의 이미지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무한’. 이 ‘무한성’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두 달이었습니다. 예전의 저에게 미술은 이미 한번 스캔을 끝낸 인연과도 같았달까요?

한번 만나 대화도 나누어보고, 눈을 마주치고 속이야기도 해보았는데 서로 그렇게 ‘인연’이라는 느낌까지는 받지 못한 사이. 그래서 어딘가에서 또 마주쳐도 이제는 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하고 서로 스쳐지나갈수도 있을 것 같은 인연. 그 인연을 이번 ‘예술교육리더수업’을 통해 다시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미술)를 이번엔 찬찬히 느리게 겪어보았습니다. 

철없던 스무살시절 멋모르고 나갔던 미팅에서 얼핏 얼굴보고 대충 통성명하던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나도 이제 세상을 겪고 희노애락을 알며 어떤 이를 만나야 이 짧은 생이 빛이 날 수 있겠다라는 지혜 정도는 장착한 상태로 나간 일생일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제는 노련해진 표정으로 부담없이 상대를 보며 서히 응시합니다. 그리고 하나에서 열까지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고 깨닫습니다. 

‘아, 이제 내 남은 생을 빛나게 해줄 사람을 드디어 만났구나’. 이렇게 나와 미술을 잇게 해준 사람. 임지영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나와 미술은 이로써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예전엔 한계지어졌던 우리의 앞날이 이제 무한의 바다에서 마음껏 끝도 없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임선생님의 삶에 녹여진 모든 미술의 이야기와 가치들이 그 자체로 하시는 말씀과 눈빛 그리고 모든 표정에 담겨서, 수업내내 저희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햇빛을 받고 광합성하는 식물처럼 따스한 미소에 반응했고, 영양가 가득한 수업들을 통해 기름져졌습니다. 그렇게 많이 웃고 많이 자라고 햇살속에 해맑던 우리 ‘예술교육 리더수업’ 1기 동기생들은 이렇게 한 그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저마다 나름의 색깔과 자신만의 훌륭한 에너지를 뿜어내오신 우리 동기분들 정말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들을 이끌어주신 임지영 선생님 사랑합니다. 8번의 수업이 마무리되면서, 갑자기 새로운 제2막의 만남에 대한 궁금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까요? 이제 그림을 봅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눈가는 촉촉해지고 미소가 서립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만남도 그림처럼 아름다울 것입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나는 바람이고 싶다

이돈성 


김환기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점 하나 하나가 내 몸안의 세포로 시작하여 선 따라 들어가니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느낌이다. 점 하나에서 시작하여 우주로 향하다니! ​어쩌면 이번 예감 수업을 그린 주제 그림 같기도하다. 작품 속에는 지난 8주 동안 함께한 예교리 선생님들의 모습도 보인다. 잊혀진 날의 나와, 수업 중의 나, 그리고 언젠가 ... 나. 

​'예교리' 교육 중간에 내가 예술감성 교육을 만난 것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 했다.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닌 누군가와의 만남과 소개로 등록한 '예감'은 그만큼 내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잠들어 있거나 아니면 가수면 상태의 오감을 여지없이 깨워 주었다. 8주차 과정을 마치는 날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 나는 한 단어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물듦’이라고 했다. 미술을 소재로 예술적 감성을 열어온 나는 내 의식 속에서부터 빛과 색채로 내 감정에 따라 이미 물들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감 수업을 통해 한가지 생긴 습관이 있다. 내가 바라보는 곳마다 마음의 앵글을 맞추면 그 속에 자연이 그린 미술이 보이고, 나만의 감상에 젖는다. 어느 때는 그 앵글 속 작품의 작가에게 말한다. “태양이 비치지만 눈이 내리게 해줘요.” 작가는 그때마다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나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 나는 어느새 신(神)의 손을 나만을 위한 전업 작가처럼 부려먹고 있는 듯하다. 내가 과연 이래도 되는가! 


어제는 심각하게 바람이 불었다. 집 앞 호수 같은 수로에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모두 사라졌다. 혹자는 따스한 봄기운이 얼음을 녹였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바람이다. 땅 같았던 월선포 갯벌이 10센티 정도 파였다. 바람이 무서운 파도를 몰고 왔고, 갯벌을 뒤집은 것이다. 바람이 봄을 불러들이고, 생명의 순환을 일으킨다. 내 마음을 조용히 물들인 감성도 존재의 탈을 바꾸는 바람 같기만 하다. 


나의 감성은 아직도 사춘기 아이처럼 ‘위험한 존재’인데, 예감을 통해 바람난 남자까지 되었으니 나의 내일은 무엇이 될꼬!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이인경


그림을 보며 사진찍는 사람, 그림 옆에서 ‘브이’하며 사진찍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일까? 다시 들여다보기는 할까? 구입하지 못해서 저렇게라도 위안삼는 걸까? 내게 그들은 이해의 바다 저편에 있었다. 

김환기의 작품의 점을 세어보다 포기했다. 대신 어떻게 그렸을까를 상상해봤다. 방대한 작업량에 새삼 압도된다. 작가가 점 한 개를 그리고 투명한 푸른 색으로 공들여 칠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언젠가 무리지어 바닷가에 모여앉은 사람들을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이 연상되기도.. 툭툭 튀어나오는 엇비슷한 모양의 생각을 떠올리느라 모니터에 김환기의 그림들을 띄우고 한참 바라봤더랬다. 


수업에서 만난 분들은 점을 감싼 각양각색의 푸름이었다. 그분들과 매주 그림을 봤다. 온라인으로 접하는 고작 그림 사진일 뿐인데 정성껏 찍어 글을 써주셨다. 마음이 흔들렸다. 한 편의 그림이 벽에 걸리는 순간부터, 아니 카메라에 담는 순간부터 그건 작가의 ‘작품’이 아니더라. 보는 이의 '마음의 반영’이었어. 어느새 타인의 삶이라는 파도가 한꺼번에 몰아쳤다. 

이리 저리 파도에 흔들리며 8번의 수업을 쌓았다. 어느새 내 노트북에는 ‘예술’ 카테고리가 생겼고, 그간의 작품 사진과 몇 개의 쪽글을 쟁여두었다. 이젠 김환기의 그림이 바다같다. 저 바다를 한 눈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이젠 온전히 누리고 싶다. 비록 까맣고 작은 점이지만, 나도 반짝이는 윤슬이 되어.


우리의 인연이 필연이 되길 기대해보며 

김현수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수많은 인연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점으로 찍어본다면 이런 광활한 우주가 펼쳐질까? 어쩌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인연을 쌓아 나라는 인생의 연결고리 맵을 보여주는 듯 하다. 나라는 흰 사각형에 유난히 크고 짙은 몇 개의 점은 때로 나와 악연으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고, 수많은 작은 점들은 나와 좋은 인연으로 멋진 추억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아닐까. 


나를 이루는 각 점들이 인연이든 악연이든 촘촘하게 연결되어 나의 삶의 스토리를 만들어준다. 게다가 각각의 점들에 그들의 삶의 스토리들이 다 담겨 있다. 나와의 짧은 인연이었지만 그들도 삶이라는 긴 여정을 또 다른 점들과 연결되어 그들만의 독특한 스토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김환기는 이런 의미에서 화폭을 점들로 채워 나간 듯하다. 혼자는 살아가기 힘든 뻑뻑한 세상,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기다려주고, 함께 아파하고 기뻐해주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게 한다. 그래서 함께 과거에서 현재를, 이제는 미래를 멋지게 살아 보자고 우리를 삶의 향연에 초대하는 건 아닐까. 이번 예교리1기를 통해 서로 다른 나이, 성별, 직업, 가치관, 감수성,개성을 가진 15분의 선생님과 예술 향유자로 맺어져 예술 교육자로 성장하는 8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신기하게도 샘들이 선정한 그림들은 각자 자신만의 인생의 색채를 담고 있어서, 짧은 시간에 서로를 내면 깊숙이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의 닮음으로 동질감도 느끼고, 서로의 다름으로 기분 좋은 낯섦도 느끼면서 우리 모두 예술로 하나가 되었다. 

'오늘은 누구의 그림에 퐁당 빠져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15분 글쓰기가 기다려졌고, 어떤 인생의 편린들을 듣게 될지 상상하면서 마음으로 품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직관적인 영감으로 내 자신을 재발견하고, 샘들과 공감하고 함께 물들어가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인생의 동지가 되었다. 

동행했던 매순간이 서로의 기억 속에 촘촘한 점들이 되어 멋진 인연으로 남아 앞으로 필연으로 지속될 거라 믿는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든 다시 반갑게 만날 것을 기약한다. 예술로 자기 긍정하게 하고, 함께 연대하고 공유하는 즐거움을 주신 임지영 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_나마스떼

김태희


별 하나의 사람과 별 하나의 사람이 점이 되고 선이 되었다. 그리고 면이 되어 우주를 채운다. 별과 사람, 그리고 우주의 힘이 더 넓은 우주의 팽창을 꿈꾼다. 작고 낮은 별 하나 길을 잃고 헤맨다. 수많은 별을 품은 우주에 길 잃은 작은 별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빛을 잃고 소멸하는 일개 별일 수도 있다. 작은 구멍.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우주에 펼쳐진 왜곡된 시공간이 술 취한 시선처럼 아른거린다. 때론 우주의 빛이 우울한 블루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초 신비를 품은 블루가 된다. 두 손을 모아 '나마스떼!'. 우리는 모두 소중한 별이다. 서로의 다양한 빛이 세상을 밝힌다. 그렇게 우주는 별을 품는다. 예술을 품은 우리도 별이다. 그 아름다운 별이 모인 우리가 되어 다시 만나자! 


벌써 종강이라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전시회를 다니고 예교리 수업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임지영 선생님과 함께 참여하신 모든 선생님들의 반짝임에 찬사를 보냅니다. 종강 오프에서 모두 뵙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만남을 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는데요.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더라도 함께한 시간보다 더 깊은 애정을 담아 우리의 만남의 끈을 축복합니다.



오늘부터 1일, 이별은 더 뜨거운 만남을 기약하고

김현숙 


오늘 마지막 (네버 세이 굿바이.😅) 

과제는 <김환기ㅡ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쓰는 예교리 후기입니다. 


​단톡에 남겨진 지영선생님의 메시지에서 다시 만남을 약속받아 기쁘다. 어제 수료식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 카페에 다시 들어와본다. 단톡방에 남겨주신 지영선생님의 한결같은 메시지! "예술은 좋은 삶의 매개입니다. 좋은 관계의 도구입니다." 그것을 알아갑니다. 나는 헤어질때 다시 만날 것을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연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새롭게 만날 인연들과 순간들을 위해 비웠다. 삶도 관계도 미니멀리즘이 자연히 체화되었다. 그런데 수업 중간에 자리를 뜨면서 내가 소감으로 남긴 말... '끝이 끝이 아니네요, 다음에 각자의 예술감상수업 경험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도 모르게 두 주먹 불끈 책상을 치면서 각오를 다졌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의 그림을 보니 세포들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보다 나는 무엇인가? 어떤 것이 나인가? 라는 화두를 꽤 오래 품고 지냈다. 음식이 소화관을 관통해서 배설되어 다시 음식의 거름이 된다. 소화된 음식은 흡수와 세포호흡을 통해 연소되며 에너지, 기운이 된다. 무엇이 음식을 먹고 흡수하고 배설하는가? 

내가 먹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음식을 '맛'으로 만나고, 매일 매순간 이별한다. 배설하지 않고 어떻게 그 맛있고 신선한 음식을 다시 만나랴. 만남보다 이별이 더 가슴 절절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헤어짐은 나로 홀로 서게 하기도 한다. 홀로 깊이 소화한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 그 달콤하고 짜릿한 '맛'으로 신선한 만남을 이어간다. 세포들의 이미지가 궁금해 구글링을 해보니,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어 소개글을 보았다. 세포들끼리 세포들과 유미가 서로 소통하고 교신한다.

김환기의 물방울들도 따로 또 같이 서로 속삭이고 있는듯, 서로 기대고 부비고 있는 듯하다. 내 몸 안에서도 수많은 세포들이 새로 태어나고 이별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삶'이라는 생명의 대하드라마 시나리오를 살아간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예술교육 리더로 오늘부터 1일, 예교리 1기로 각자 경험하고 성장한 이야기로 다시 만나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빌어 드리는 인사

심정은 


함께 했던 시간 만큼 그리고 그동안 나눈 기억 만큼 관계는 깊어가고 끈끈해집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스러지면서 끝내는 스쳐지나간 인연이 되어버리기도 하지요. 우리가 만난 데에는 하늘의 뜻이 있듯이 만남이 이어지는 데에도 우리 스스로가 이유를 만들어야겠지요.

예술감성 글쓰기를 통해서 만났으니 그 고유의 색이 바래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림 보고 글쓰기' 과제가 예감클럽 회원님들에게는 일상의 습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자리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감클럽의 주체가 되어주시는 우리 예교리 1기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시 만날 것이며, 계속 만날 것입니다.